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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https://youtu.be/sLCrUQTW6nw


trolley Dilemma 라는 말이 있습니다. 트롤리란 전차를 말합니다. 왜 트롤리 딜레마라고 하는가 하면 첫번째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 이렇습니다. 사례 1: 트롤리는 선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고, 선로에는 다섯 사람이 있다. 당신은 선로 밖에 서 있고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선로전환기를 당기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선로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이 죽게 된다 는 것입니다.둘째 사례가 있습니다. 사례 2: 앞의 상황과 같은데 당신은 선로 밖에 서 있고, 바로 옆에는 상당히 무거운 사람이 한명 서 있다. 다섯 사람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선로 위로 밀쳐서 그 무게로 트롤리를 멈추게 하는 것인데, 이 경우 트롤리는 멈추게 되지만 그 사람은 죽게 된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두 사례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 실험 연구 결과를 보면 사례1에서는 피실험자들의 89%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하다."고 대답한 반면 사례2에서는 단 11%만이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실험1과 실험2에서 태도가 변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실험 1에서는 다섯을 살리고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옳다고 한 반면에 실험 2에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하였는가 하면 두 실험 모두다 한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선택은 자신이 타인의 죽음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하느냐, 그리고 죽음이 얼마나 불가피한가에 대한 마음의 고민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두번째 사례에서 자신이 다른 이의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에 대하여 죄책감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절을 보면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데 죄를 지은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어서 24절을 보면 여기서 복음 즉 복된 소식이 들려 오고 있고 죽음에서 벗어난 생명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 즉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벗어남이 주어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 즉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이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까?

        25절을 보면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게 되며 나를 죽음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로전환기를 바꾸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아들 예수를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세우셨다는 말은 공개적으로 보이도록 펼쳐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죽게 하심으로 그 피 즉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옮겨 주셔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조금 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알기를 원합니다. 화목제물이라는 단어는 힐라스테리온 이라는 헬라어 입니다. 이 단의 원래의 뜻은 달래다, 만족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에게 제사를 드려 신을 달래며 만족하게 하는 데서 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에게 제물을 가져와서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신을 달래고 만족시켜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신으로부터 얻어 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달래실 수 있으며 만족시켜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신들은 인간들이 드리는 제물로 달래지고 얼러지고 만족해서 복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 즉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어떠한 방법과 수단으로도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 시킬 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표현을 자세히 주의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화목제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십니다. 그럼 누가 신을 달래는 화목제물을 놓으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 자신의 진노를 달래신 것이며 자신의 심판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아 부으심으로 만족하게 되신 것입니다.

        왜 성경이 이것을 은혜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왜 이것이 값없는 은혜요 말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부르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 편에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묶인 자들이었고 선로 위에 놓여 기차가 지나갈 때에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아들에게 돌리시고 쏟아 부어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인한 피로 인하여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대속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하여 사하여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서 보지 않아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를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간질의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간질이 시작되면 정말 끔찍해서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간질이라는 병을 언제 가지게 되는가 하면 그가 죽음의 공포에 사로 잡혔을 때였습니다. 그는 황제에 대항하는 세력에 잠시 몸을 담갔다가 잡혀 시베리아로 보내어졌습니다. 그리고 8개월의 형을 살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 형을 살면 풀어주어서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고 형을 선고 받기 위해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자신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져 바로 형장으로 끌려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도스토예프스키는 갑작스런 사형 선고와 사형집행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공포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나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만약 산다면 나의 삶은 끊임 없는, 영원처럼 느껴지며 1분이 백년과 같으리라,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인생의 단 1초를 소홀히 하지 않을 텐데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고 한 사람씩 두건이 얼굴을 덮을 때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간질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어 평생 이 간질로 인하여 고통을 당합니다.

        세상에서 죽음, 갑작스런 죽음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이 이정도 라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갑작스러운 공포에 직면하게 되면 다리가 풀려 설 수가 없으며, 얼굴은 사색이 되고, 넉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죽음에서 그리고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열렬히 환영하며 받아 들여야 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이러한 것을 얻는 것이라면 어찌 마다할 수 있으며, 어찌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이것보다 중요하며, 무엇이 이것보다 더욱 가치 있으며 의미 있는 일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세우신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분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기꺼이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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