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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GpuTyBjEBk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은 구원을 이루는 회개는 어떻게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의미로는 인간은 구원을 어떻게 이룰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구원이란 회개함을 통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와 구원은 뗄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이며, 회개는 구원을 이루는 중심 요소이며,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구원을 이루는 회개에 대하여 성경 말씀을 통하여 살펴볼 것인데 그것이 인간의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어떻게 일어나며, 일어나는 방식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회개란 단어의 의미와 그것이 인간의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헬라어 메타노이아 라는 단어가 회개로 번역되며, 회개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 의미는 다시 생각하다, 한 번 더 생각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메타노이아 라는 단어는 단순히 다시 생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의 변화의 결과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하려고 하거나 어떠한 중요한 결정이나 선택을 할 때에 다시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것 또한 회개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회개 즉 다시 생각하며, 한번 더 생각하다는 것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다시 생각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가 분명히 정해져 있으며, 지시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다시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을 결정하거나 또는 무엇을 선택하거나 하는 방향과 대상과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128-29절을 보면 [ 21:28-29]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What do you think? There was a man who had two sons. He went to the first and said, 'Son, go and work today in the vineyard.' 'I will not,' he answered, but later he changed his mind and went. 예수님께서는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의 내용은 두 아들을 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아버지가 자신의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애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합니다. 이에 그 맏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대답합니다. 아버지 가겠나이다 그리고는 그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둘째 아들의 경우에 대하여 예수님의 비유가 이어지게 됩니다. 마태복음 2130-31절을 보면 [ 21:30-31]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Then the father went to the other son and said the same thing. He answered, 'I will, sir,' but he did not go. "Which of the two did what his father wanted?" "The first," they answered. Jesus said to them, "Truly I tell you, the tax collectors and the prostitutes are entering the kingdom of God ahead of you.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바로 싫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에 뉘우치고 갔다고 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아들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듣는 청중들은 둘째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첫째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왜냐하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싫습니다 라고 말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의도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중과 의도가 마지막 내용에 담겨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 비유는 순종하는가의 문제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착한 아들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예수님께서 이 두 아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그 후에 뉘우친 둘째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내용은 아버지가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요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요청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라고 요청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 구절이 마태복음 2132절을 보면 [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For John came to you to show you the way of righteousness, and you did not believe him, but the tax collectors and the prostitutes did. And even after you saw this, you did not repent and believe him.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다고 합니다. 누가 보낸 세례 요한을 보낸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가 와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의의 도로 왔다고 합니다. 이 말은 요한이 온 길이 의의 길을 따라 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은 인간이 의롭게 되는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왔으며, 그는 의롭게 되는 길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가 한 말을 믿지 않고 그가 보인 것을 믿지 않으며, 가르침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으며, 의롭게 되는 자를 따른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내용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회개란 다시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과 방법에 대하여, 그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며, 한번 더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란 하나님에 향하여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회개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생각할 때에 옳지 못하거나 바르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마음으로 뉘우치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도 회개의 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는 참된 회개 후에 와야 하는 것이며, 참된 회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양심이나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어긋나기 때문에 마음의 뉘우치고 다시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 또한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 안에 있는 양심의 법이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고 뉘우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214-15절을 보면 [ 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Indeed, when Gentiles, who do not have the law, do by nature things required by the law, they are a law for themselves, even though they do not have the law. They show that the requirements of the law are written o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s also bearing witness, and their thoughts sometimes accusing them and at other times even defending them.) 이방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은 아무 법이 없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고 합니다. 즉 그들의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양심의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 안에 있는 법의 행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그의 양심이 자신이 행한 이들에 대하여 옳지 못함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에서 옳지 못함과,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에서 옳지 못함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옳지 못함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의 경우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일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대하여 한번 더 생각한 것입니다. 이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인 것입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요한이 와서 의롭게 되는 길 즉 구원의 길을 보여 줄 때에 그것을 믿은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던 삶에서 돌이켜 그것을 마음으로 받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이 바뀐 것이며, 하나님을 이제 다르게 대하며, 그분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누가복음 198절을 보면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But Zacchaeus stood up and said to the Lord, "Look, Lord! Here and now I give half of my possessions to the poor, and if I have cheated anybody out of anything, I will pay back four times the amount."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신의 집으로 청하여 말하기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이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라고 합니다. 그는 이제껏 세리로 살아오면서 부를 축척하며 살아왔습니다. 물질이 그의 인생의 가장 귀한 가치요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세리장의 자리에 올라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은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합니다. 삭개오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의 마음에 다시 생각하며,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누구를 생각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을 다시 생각한 것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회개가 일어나자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더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킨 것입니다. 삭개오가 하나님의 이러한 계명과 말씀을 이제껏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유대인입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제대로된 신앙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의하면 나의 것을 속여 빼앗는 일을 하면 오분의 일만 배상하면 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양을 도적질한 자가 갚아야 할 몫인 네 갑절을 갚겠다고 하는 것입니다.(22:1) 이 말은 그는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들었던 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개의치 않고 살았으며,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뉘우치거나 돌이키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자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바뀌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대하는 생각과 방식과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며 그것은 그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아들은 뉘우치기만 하고 속상해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포도원으로 간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 회개와 구원이 밀접한 관계 땔래야 뗄 수 없는 것인가 하면 바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며, 하나님 향하여 사는 것이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하고, 한번 더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회개의 또 다른 요소는 회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25절을 보면 [딤후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Opponents must be gently instructed, in the hope that God will grant them repentance leading them to a knowledge of the truth, 목회자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말씀을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는지를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회개함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마음을 주시며, 회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회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회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나만의 힘으로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나의 생각을 내가 바꾸는 것이며, 내가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러한 부분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회개하라고 요청하며,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가?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회개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누가복음 532절은 우리고 하여금 회개가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자신의 죄에 대하여 자각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목이 곧으며, 마음이 완악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자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부르시는 것이며, 그들 회개 시키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회개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는 유효적 부르심과 무효적 부르심이 있습니다. 유효적 부르심이란 참된 회개로 나아가게 하여,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달라지게 하는 효력이 있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무효적 부르심은 말씀을 듣지만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달라지지도 않고 첫째 아들과 같이 대답을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32절에서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왜 부르시는가 하면 회개시키기 위하여 라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의 회개시키러 라는 번역은 좋은 번역으로 주님께서 회개를 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회개하는 자의 의지나 결정은 필요 없는가 하는 부분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부르시고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며, 한번 더 생각할 마음을 주십니다. 이때에 회개할 자의 마음에는 회개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하는 결심이 일어나게 반응하여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강요나 억압이 아닌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하시며, 마음을 돌이키고자 하는 은혜로 인하여 회개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게 됨으로 회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심으로 그 말씀이 선포되는 방식으로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완고하게 하지 말고, 거부하지 말고 그 말씀을 다시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구원함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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